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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결점투성이 '국부' '마오쩌둥급' 추앙

신해혁명 100주년 맞은 중국대륙 쑨원 추모 열기 후끈

대만에서 국부로 불리는 쑨원(孫文)은 대륙 중국인의 눈으로 볼 때는 인간적으로 결점이 적잖은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이 발발하기 이전 도쿄에 망명해 있었다. 청나라에 의해 상습 혁명꾼으로 찍혀 있던 당시 신세는 처량했다.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망명객에 홀아비 신세였음에도 친구 쑹루야오(宋如耀)의 큰딸 아이링(靄齡)에게 몸이 달아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후손인 재벌 쿵샹시(孔祥熙)에 매료돼 있던 그녀가 애매한 태도를 취하자 비서인 동생 칭링(慶齡)에게 적극 돌진, 결혼에 골인했다. 양다리 걸치기가 따로 없었다.

더구나 쑨원은 어릴 때 미국 이민을 한 탓에 중국어를 잘하지 못했다. 국적도 미국이었다. 공산당과 끝까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내전을 벌인 국민당 창당 주역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그는 장제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좋다. 실제 그는 자신의 양자 내지는 제자에 해당하는 장제스와 동서관계이기도 했다.

이런 결점에도 중국에서 마오쩌둥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취급받는다. 국부로 추앙받는다고 해도 좋다. 2일에는 6m 높이의 그의 초상화가 마오 전 주석 초상 맞은편인 톈안먼광장 인민영웅기념비 앞에 내걸렸다. 이는 지난 4월에 이은 두 번째로 매우 이례적이다.

쑨원의 묘인 난징(南京)의 중산(中山)릉 역시 국가 급 유물로 철저한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다. 참배객들도 끊이지 않는다. 묘가 중국인들에게는 악의 축이었던 장제스에 의해 조성됐는데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그에 대한 시각이나 존경의 마음은 홍콩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산당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것 같은 그가 중국과 대만, 홍콩을 일컫는 이른바 량안싼디(兩岸三地)에서 이처럼 추앙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2000년에 걸친 봉건시대를 종식하고 아시아에서 첫 공화정 체제를 수립했다는 사실이 높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

게다가 그는 공산당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취했다. 장제스에게 공산당은 물론이고 소련과도 제휴하라는 권유를 자주 했다. 중국 근대사에서는 이를 연아연공(聯俄聯共)이라고 부른다. 두 차례에 걸친 국공합작은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심도 없었다. 혁명의 완수를 조건으로 대총통의 자리를 욕망의 화신으로 유명한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인간적인 결점 못지않게 매력도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역시 중국인들의 톨레랑스, 즉 관용의 미덕을 꼽아야겠다. 과가 많아도 공을 인정해주는 정신 말이다.

신해혁명 기념일인 10월 10일의 쌍십절은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 아마 당일을 전후해 쑨원에 대한 추모 열기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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