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분노’를 살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낭만과 좌절, 분노가 혼재한 시기였다. 박정희와 전태일로 상징되듯 모순의 시대이기도 했다. 8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도전과 응전, 모순과 굴레가 상존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했다.
90년대는 허무와 해체의 시기였다. 70년대 일본의 허무주의와 9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자폐적 감성과 결합하여, 비관과 허무, 거대담론의 해체와 파편화, 개인화의 기호들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10년은 환호와 열광, 실망과 탈주의 시기였다. 월드컵과 노무현 현상이라는 쌍끌이 유자망에 걸려 신나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버린 혹은 얼어버렸다고나 할까.
새로운 밀레니엄의 두 번째 10년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분노를 살고 있다. 경제영역을 넘어 사회전반에 침투한 시장주의자들의 탐욕이 극에 달한 결과다. 샌델은 이 역시 정의의 문제라고 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월가 점령시위를 불러왔다는 거다.
#결핍도 경쟁력이다
7년간 머물렀던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 주위사람 대부분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충고했다. 그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해야 했을 만큼 사회는 냉혹했다. 그렇기로 후회와 자탄으로 허송하지는 않았다.
어렵게 들어갔던 신문사를 그만 두기로 결정했을 때 어떤 선배는 “이런 식으로 끝내면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 거”라며 의미심장하게 충고했다. 역시 그 말이 맞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지만, 그렇기로 할 일을 못하진 않았다.
고려대 김예슬에 이어 서울대 유윤종이 대학거부선언을 하며 자퇴했다. 김예슬에겐 충격을 받았던 동료 학생들이 유윤종에겐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아무려나 나는 그네들의 고뇌를 이해한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자세다. 결핍도 때론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때로 외로웠지만 그로인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