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렸던 한 학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호텔 옆방에 일본인처럼 보이는 여성 천문학자가 묵고 있었다. 그녀도 나를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단다. 우리는 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인이었고 아마추어천문 동아리 후배였다. 집에 돌아와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그녀와 내가 여러 장의 사진에 같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1주일에 대략 DVD 18장 정도의 관측자료를 쏟아낸다. 그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숱한 기록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천문학자들이 1998년에 찍은 허블우주망원경 자료를 다시 분석해서 실제로 외계행성을 찾아냈다. 별 주위를 도는 행성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렵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옆에서 반딧불의 미세한 빛을 찾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헤드라이트 불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야만 비로소 어두운 반딧불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이 1998년에 HR8799라는 별 주위를 찍은 사진을 다시 분석했다. 관건은 별빛을 어떻게 잘 차단하느냐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별빛을 차단한 후 콘트라스트를 극대화하고 잔류하는 빛을 최소화하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었다. 이 새롭고 정교한 분석 소프트웨어로 관측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그러자 1998년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HR8799 주위의 행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곳에 찍혀있었지만 새로운 분석 기술 덕분에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외계행성 탐색 분야에서 오래된 관측자료를 다시 분석하는 작업은 무척 중요하다. 요즘 찍은 자료와 비교하면 행성의 공전궤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질량도 결정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번에 HR8799 주위를 도는 행성을 다시 찾아낸 것과 똑같은 분석 방법을 허블우주망원경에 찍힌 다른 400여개의 별에도 적용해서 분석해 볼 계획을 갖고 있다. 얼마나 많은 외계행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낼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