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이나 곰을 보고 착각한 것일까, 실제로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설원을 등반하면서 생길 수 있는 환시(幻視) 현상일까? ‘전설 속의 설인(雪人)’ 예티(Yeti)의 존재 여부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월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 케메로보주에서는 러시아, 미국 등 5개국의 예티 연구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쇼리야 산맥의 아자스카야 동굴과 주변 산을 수색했다. 2년 전, 인간과 닮은 2m정도의 텁수룩한 생물을 봤다는 사냥꾼들의 정보가 잇따랐던 곳이다.
이번 조사와 관련해 케메로보 주정부는 지난달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쇼리아 산맥에 예티가 살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신문이 전한 인류학국제센터 소장의 말에 따르면, 동굴에 있는 한 발자국에서는 12가닥의 회색 털이 발견됐고, 다른 발자국에는 다섯 개의 발가락 형태가 남아 있었다. 동굴 속의 파인 곳에는 사방 2m넓이로 고사리류가 깔려 있어 주거흔적 같았다. 또 산에서는 두 그루의 나뭇가지를 약 3m 높이로 잡아맨 것도 여럿 발견됐다. 현장을 답사한 전문가들은 “케메로보주에 설인이 95%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팀이 내놓은 증거는 불충분해 예티로 단정 짓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털을 조사한 DNA 결과도 없고 예티를 촬영한 물증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털과 주거흔적은 예티가 아니라 다른 동물이 남긴 것들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케메로보 주정부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인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번 러시아 케메로보주의 조사결과는 ‘설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 1951년 영국 탐험가 에베르스트서 특인한 발자국 발견
‘예티의 존재’는 히말라야 등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설인 목격담이 전해져 내려왔고 현지를 찾은 각국 등반대원들에게 목격담이 알려지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후 각국의 탐험대들이 잇따라 현지를 방문해 예티의 실체 규명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1951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탐험가 에릭 시프턴은 빙하를 건너다가 이상한 발자국을 발견했다. 길이 30cm, 폭 13cm의 발자국은 발가락 형태가 남아있었고 발뒤꿈치 모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진이 발표되자 전세계 인류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971년 네팔의 다울라기리4봉(7661m)에 도전한 일본 등반가 요시노 미쓰히코는 5100m 지점의 제2캠프에서 특이한 동물과 마주쳤다. 이 동물은 약 15m 전방의 설원 경사면을 올라가고 있었다. 신장 약 150cm에 전신에 길게 털이 났고, 두 다리로 서 있었다. 둥근 눈과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다울라기리4봉 등반대에 참가했던 다카하시 요시테루는 이후 1994년, 2003년, 2008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원정대를 이끌고 이 지역을 수색했다. 설인이라고 생각되는 발자국은 발견했지만, 자동촬영카메라 등을 이용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설인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카하시는 “설인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히말라야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오랑우탄의 아류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2003년 수색 당시 함께 했던 네팔 트리부번대의 예티 연구가 람 구마루 판디 교수도 “히말라야 주민들의 목격담을 조사했는데 결코 곰이나 원숭이를 잘 못 본 건 아니었다”고 밝혀 예티의 실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예티의 존재를 찾아 나선지 반세기가 넘었다. 지금도 아마존과 파푸아뉴기니의 밀림 등지에서는 특이한 미등록 동물들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지구에 얼마나 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아무도 모른다. 러시아 케메로보 주정부의 조사 발표로 다시 촉발된 설인 논란이 과연 예티의 실체 규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예티란?
‘예티’는 네팔 동부 히말라야 지역의 셸파족 언어로, ‘암벽에 사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히말랴야에 있다고 믿어지는 유인원류의 미확인동물, 즉 전설적인 설인을 일컫는다. 목격담을 종합하면 키는 2m정도의 대형종과 1.5m 정도의 소형종 등 2가지 부류다.
네팔의 쿰부에 위치한 쿰중의 불교사찰에서는 예티의 것이라는 머리가죽이 보관되어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예티와 무관하다는 주장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