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상매
스티브 잡스를 얘기할 때 출생 배경을 빼놓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아로서 삶을 시작해야 했다.
어미 매는 새끼 매에게 먹이를 줄 때 높은 곳에서 먹이를 떨어뜨린다. 그 먹이를 차지하려고 새끼들은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개중엔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녀석도 생긴다. 어미 매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다리를 다친 ‘낙상매’다. 낙상매는 유별나게 사납고 억샌 매가 돼 금테 발찌를 두르고 임금의 사냥에 사용되곤 했다. 서얼 출신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설명이다.
인류 역사엔 숱한 낙상매가 등장한다. 독일 학자 아이히바움에 의하면 서양 천재들의 정신을 분석해 보니 78명 중 65명이 육체나 가족관계에서 결함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왕이 된 정복왕 윌리엄, 상속권을 박탈당했던 인류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버림받은 공주의 신분으로 세계 제국을 건설한 엘리자베스 1세 등.
환경을 탓하며 한탄으로 허송하는 청춘이 있다면 새겨둘 일이다. 때로 결핍은 강력한 무기이며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낙상매가 강인한 힘과 생명력을 갖게 되는 이치를.
#생각
생각이란 뭘까? 흔히 한자어 ‘生覺’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아니다. 생각은 순우리말이다.
표현된 것만이 생각이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 정보와 느낌이 모두 생각이 되는 건 아니다. 그중 표현된 어떤 것만이 생각이다.
표현은 말과 글, 마음으로 한다. 그것이 생각이고 때로 예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설명이 이와 유사하다. 자연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며, 그중 인간에게 어떤 감흥을 일으킬 수 있는 것만을 추려냈을 때 즉 카타르시스된 것만이 예술이라는 거다.
구스타프 플로베르가 말했다던가. “역사를 쓰는 일은 대양을 마시고 한 줌의 오줌을 싸는 것과 같다”고.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는 앙리 푸앵카레의 지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실은 고래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라서 스스로 위용을 드러내지 않는다. 역사가들이 사실들에 가치를 부여하듯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은 표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