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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올해는 사계(四季)가 제 시간을 도로 찾아가는 느낌이다. 봄도 그리 짧지 않았고, 여름은 속절없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가을은 아직 제 긴 옷자락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면, 가을은 천연염료로 붉고 노랗게 물들인 조각보들로 땅 위에 수를 놓는다. 순식간에 캔버스가 된 대지는 한 폭의 채색화가 된다.

빗자루를 든 아저씨들이 그걸 하나하나 부지런히 지우는 풍경도 또 하나의 그림이 된다. 거리의 나무들이 다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벗고, 자기가 길러낸 수많은 분신들을 지상으로 돌려보내면 우리는 가을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형태로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그 미적 유연함은 생명 본래의 원리인가?

새싹도 예쁘고, 낙엽도 황홀하며 나목(裸木)이 되어도 멋지다. 모든 것을 다 털고 나서도 한 마디 불평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우뚝, 고요히 서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걸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풍성한 생애와 무욕의 생애가 하나로 겹쳐 있는 가을 나무는 겨울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조차 얼게 하는 동풍(凍風)이 부는 날에도, 나무는 속으로, 속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땅 속에서 뽑아 올리는 흙색 진액이 나무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신록(新綠)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어간다. 자기 해체를 통해 자기를 완성하고, 자기를 완성하는 순간부터 다른 시간의 세계에 서슴없이 들어서는 그 끊임없고 끈질긴 생명의 윤회는 우리에게 희망의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우주의 맥박에 맞추어 변하는 계절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인생의 계절도 매 순간 축복이다. 가을이 지나는 길목은 그래서 쓸쓸하지 않으며, 겨울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는 또 다른 경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에 필요한 모습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어느새 흰머리가 어깨 위로 날리면 그건 그것대로 아름답고, 미소 진 입가에 잡히는 주름도 인생의 채색화다. 시간과 자연이 화가가 되어 만들어 준 자화상을 거부하는 것은 계절이 비닐하우스에서 애초의 리듬을 잃은 채 갇혀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놓아야 할 때를 알고, 떠날 때를 아는 삶은 빛난다. 그런 이의 얼굴에는 세월의 진액이 그득하다. 비발디의 ‘사계’가 문득 듣고 싶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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