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중심
황석영의 을 읽고 다소 무겁고 진득한 리뷰를 썼을 때, 대학 후배가 대뜸 ‘중심의 괴로움’에 공명한 것이라는 댓글을 달아놓았었다.
다시 김지하의 시를 찾았던 기억이다.
S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 ‘중심의 괴로움’ 전문.
오늘 아침 경향신문을 보니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의 꼭두쇠로 마르크스가 나와 있다. 거기 가라타니 고진을 인용한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직 마르크스주의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면서, 그만큼 광범위한 영역에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는 거다.
부르디외를 인용하자면 김진숙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가능성의 중심'이 아닐까. 당분간 '중심의 괴로움'을 겪을 테지만.
#파워블로거
나도 한때는 파워블로거였다.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올리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 저절로 인기블로거가 됐던 거다.
파워블로거로서 나는 다소 엉뚱한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블로그에 일체의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안타까워하는 후배도 있었다. “형 정도면 광고만으로도 꽤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나름 이유가 있었다. 글의 성격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블로그를 수익의 수단으로 생각지 않았다. 내 글은 주로 정치비평이거나 서평, 인문학 에피소드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등이었다.
수익형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수억을 벌기도 한단다. 그들을 무작정 나무랄 이유가 없다. 외려 부럽기도 하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느냐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소통의 공간을 오염시키는 방식이어선 안 될 것이다.
블로그에든 SNS로든 글을 공개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면 그곳은 이미 개인의 공간이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며,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