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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보리빵과 갈퀴를 기억하라

어떤 남자가 배가 고파 싸구려 보리빵 한 개를 사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가 고프자 두 개, 세 개까지 더 사 먹었지만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주머니 속에 남아있던 돈을 다 털어 보리빵보다는 좀 값이 나가는 흰 빵 하나를 사먹고 나서야 비로소 흡족해졌다. 그런데 시장기를 채우고 나니 갑자기 후회가 몰아쳤다. “아 이런 바보같이! 처음부터 이 흰 빵 한 개만 먹었으면 됐을 텐데.” 러시아 민담이다.

무언가 이루어지려면 과정이 있게 마련이고, 대세가 판명되는 시점에 일어나는 사건은 그 이전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보지 못하면 마지막에 먹은 흰 빵이 전체를 결정해버린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 빵은 보리빵의 역할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치를 발휘하게 된 것이지, 그 자신의 가치 자체로 혼자서 대세를 기울게 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보리빵을 무시하는 자들과 자기가 바로 그 값비싼 흰 빵인 줄로 아는 이가 적지 않다.

역시 또 다른 러시아 민담이다. 도시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이 시골집에 잠시 돌아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요즘 풀베기 손이 모자란단다. 아들아 갈퀴를 가지고 나를 도와주렴.” 이젠 자기 처지에 노동이 천하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일하기도 싫었던 아들이 대답했다. “전 그간 학문에 깊이 몰두하느라 그만 농사에 쓰는 말을 다 잊고 말았네요. 음, 갈퀴가 뭐더라?”

그러고는 얼른 밖으로 내빼려는데 마침 마당에 놓여있던 갈퀴를 밟아 이마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 “아니 어떤 바보 같은 놈이 여기다 갈퀴를 던져놓은 거야!” 못된 아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흙을 파고 땅을 일구는 아버지의 그 갈퀴가 자신을 길러냈다. 도시에서 먹물이 머리에 좀 들어갔다고 으스대고 몸으로 일하는 걸 우습게 생각한 이 아들은 그 잘난 자기 머리와 몸을 만들어준 힘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잊고 산다. 그래서 땅바닥에 뭐가 있는지 볼 이유가 없다고 뻐기는 자들은 저도 모르게 갈퀴를 밟다가 봉변을 당한다. 그러나 그건 봉변이 아니라 갈퀴의 경고다. 이걸 무시하면 뭐로도 막기 어려운 새로운 방식의 풀베기가 시작된다. 일단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갈퀴의 이름을 잊어버린 척 하는 이들 또한 보기 드물지 않다.

보리빵의 기여와 갈퀴의 노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회는 단지 민담 속에만 있지 않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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