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소 제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이기승(49) 부장은 요즘 속이 타들어간다.
올해 둘째 아들이 4년제 사립대학에 합격한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내년부터 대학생인 두 자녀의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갑갑해서다. 학자금 대출을 떠올려보지만 기존 대출 규모가 큰 데다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고심 끝에 2년 넘게 부었던 적금을 깨기로 했다.
#2. 주부 이지숙(33)씨는 최근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은행 신용대출이 많아 긴급한 생활자금을 카드론 등 제2금융권에서 빌려 쓰거나, 보험 계약자대출 등을 받아 생활자금으로 융통했으나 다달이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오랜 기간 유지해온 보험을 해약하고 말았다.
고물가와 실질소득 감소로 생계비가 늘어나자 원리금 부담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적금·보험 해약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예·적금 담보대출은 올해 5월 말 8103억원에서 지난달 중순까지 8341억원으로 늘었다. 우리은행의 예·적금 중도해약 건수는 올해 상반기 54만9000여 건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4000여 건 이상 늘었다. 보험료 납입을 2개월 이상 하지 못해 실효되거나 계약을 해지한 건수도 7월 44만7000건, 8월 51만8000건, 9월 43만8000건에 달했다.
마케팅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NICE알앤씨는 ‘금융소비자 리포트’에서 보험 가입자 중 21.6%는 “최근 3년 내 보험을 해지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해지 사유로는 ‘자금 필요’(28.0%), ‘보험료 납부 부담’(27.2%) 등 경제적인 이유가 절반 이상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제성장률이 하향곡선을 긋는 가운데 생활비 마련, 고금리 대출 이자 상환 및 중도 상환을 위해 예·적금 담보대출을 받거나 아예 적금·보험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내 후년 가계빚 1000조 돌파
4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가계부채는 892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5조6000억원 늘어났다. 올해 가계부채 증가액은 60조원으로 급증,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3년 하반기에는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하게 된다.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난 탓에 기존에 대출받은 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연체 비율도 부쩍 올라가고 있다.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해 비슷한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가계대출 연체율이 올해 2~3분기를 기점으로 대부분 눈에 띄게 상승했다. 특히 주로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고 있어 우려를 더하는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내년 경제 전망이 더 안 좋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가계가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고 소비를 줄이는 식으로 부채 부담을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