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법인을 운영하는 세무사 강 모씨는 지난해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과세표준이 되는 소득금액이 기준금액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돈을 적게 버는 것은 아니다. 세무 전문가답게 세금을 피하는 방법을 꿰뚫고 있어서다.
강씨는 세무법인에서 벌어들이는 수수료를 법인계좌가 아닌 직원 명의 통장으로 받는다. 대신 직원들이 가족식사 등 개인적으로 사용한 법인카드 사용액은 회사의 비용으로 잡는다. 이렇게 하면 강씨의 회사는 번 돈은 없고, 쓴 돈만 많은 ‘과세미달’ 법인이 된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소득세 6억원을 탈루했다.
강씨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근로자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국세청과 조세연구원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소득자 1516만명 가운데 과세자는 924만명으로 60.9%에 불과했다. 나머지 592만명은 과세 기준에 미달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사업소득자 중에서는 523만명 중 247만명이 과세미달자였다. 2039만명의 근로자와 자영업자 중 무려 41.1%인 839만명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 실제로 버는 돈이 너무 적어 세금을 내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과세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비과세나 세금감면, 공제 등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과세·감면 혜택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비과세나 공제가 너무 많다 보니 총급여의 3분의 2가 과세 대상 소득에서 빠질 정도로 과세 기반이 허약하다. 국민의 급여총액이 100원이라면 67원이 비과세소득인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무턱대고 비과세나 세금감면 혜택을 줄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월급쟁이의 ‘유리지갑’만 얇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감세 혜택이 거의 없는 서민 근로자의 소득공제 혜택 축소는 가처분 소득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며 “다수 국민이 손해를 볼 수 있는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는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을 높이고, 지하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세연구원 김재진 선임연구위원은 “규모나 재정 증대 효과가 훨씬 큰 자영업자 소득 파악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먼저 해야 한다. 재산 국외 도피와 불법 상속 등을 막을 제도·행정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