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입자물리학연구소 CERN은 12월 13일 오후 2시(현지시간) 2011년의 LHC 실험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거대한 하드론 충돌장치 (Large Hadron Collider)라는 의미를 지닌 LHC는 CERN 근방의 약 100m 지하에 건설된 둘레가 27km에 이르는 거대한 입자 가속기다. 2008년에 완성된 이 가속기에서는 2010년부터 양성자를 3.5 TeV로 가속시켜서 정면충돌시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 에너지는 우주가 빅뱅에서 만들어지고 약 1000억 분의 1초가 지난 순간에 해당하는, 인간이 한 번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진정한 미지의 세계다.
현대 입자 물리학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는 기본 물질과 그 상호작용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거의 다 설명한다. 1967년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가 핵심적인 구조를 완성한 이 이론은 이후 40년이 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세부 구조까지 극히 정확하게 검증된 ‘거의 모든 것의 이론’으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 (the standard model)이라고 부른다. 힉스 입자는 표준모형의 핵심적인 구조를 이루며, 태양과 다른 별들이 빛나는 과정의 기본 원리와 원자핵의 베타 붕괴 등을 설명하고, 표준모형에서 입자들의 질량을 결정하는 입자다. 표준모형의 다른 구성 입자가 모두 발견되고 그 성질들까지 자세히 밝혀지고 있지만, 힉스 입자만은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LHC 실험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세미나에서 먼저 ATLAS 그룹의 대표인 파비올라 지아노티 (Fabiola Gianotti)가 ATLAS 검출기로부터 126 GeV의 에너지에서 오차 범위를 2.3배 벗어나는 데이터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다음으로 CMS 그룹의 대표인 구이도 토넬리 (Guido Tonelli)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에너지가 115에서 127 GeV인 범위에서 오차보다 1.9배가량 더 많은 데이터를 얻었으며 특히 124 GeV에서의 시그널이 힉스 입자와 매우 비슷했다.
물리학 실험에서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고 할 때는 오차 범위보다 5배 이상 많은 시그널을 요구한다. 그런 시그널이 우연히 나올 가능성은 백만분의 1 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발표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파비올리는 오차 범위를 5배 벗어나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2012년에 약 4배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두 실험이 독립적으로 거의 같은 질량에서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를 보았다는 것은 흥미롭고도 매우 시사적인 결과다.
이 시그널이 힉스 입자로 판명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모형은 더욱 강력한 근거를 얻고 확증될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구축한 이론이 이렇게 정확하게 자연 현상을 예측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입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2012년의 실험을 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되었다.
/이 강 영 교수(건국대학교 물리학부 양자 상 및 소자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