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친구들이 “정말 너무 하지 않았니?”라며 처음 신성일 씨의 폭탄고백을 얘기할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부인 엄앵란 씨가 “그간 속 썩여왔지만 내가 대인배처럼 참아줬다” 식으로 방송에서 얘기한 바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 혼외 연애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봤을 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든다. 결혼 후 벌어지는 프라이버시는 숨겨주는 게 상도덕상 미의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목적으로든 스스로 까발리는 것 역시도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그걸 두고 “늙어서 추하고 뻔뻔하게 연애는 무슨!”이라며 욕할 생각은 없다. 결국 인간은 자기 깜냥만큼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다만 내가 단순히 ‘바람 피운 남편의 아내’라는 역할에 불쾌함을 넘어 불편함을 경험한 것은 신성일 씨가 책 출간 후 아내 엄앵란이 ‘삐쳤다’라고 표현했을 때였다. 삐침은 단순히 질투 등에 의한 토라짐 정도의 느낌을 부르는 표현이다.
그는 모든 갈등을 일으키고, 그 상황을 변명이 아닌 영화같은 스토리로 꾸며내고,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상대 엑스트라 배우의 감정까지 파악해서 대사까지 미리 쳐주었다. 이를 보노라면 그가 불멸의 남자 주인공인 그 아름다운 세상에선 주변인의 감정은 그저 자신의 숭고한, 사랑에 겨운 감정을 흥겹게 북돋아주는 악의 없는 감정으로 치부되는 느낌이다.
왜냐, 아무도 남자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이거야 원, 남자의 이기심은 모든 여자의 한없는 사랑과 포용력으로 용서가 되는 007 제임스 본드의 세계로구나!
남자는 천성이 바람 같아 언제 밖으로 나돌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 마, 난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조강지처 옆으로 결국엔 돌아가는 의리 있는 사내야, 라고 말하는 것은 언뜻 들으면 어질고 인내심 많은 ‘통 큰’ 아내를 칭찬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은 자기 뜻대로 휘둘러도 되는, 여자를 무시하는 말이다. 이런 구식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마초 나르시스트의 공식을 영원히 박제시켜줄 ‘통 큰 여자’의 모습을 그녀에게 기대한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