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중국으로서 정계(正界)를 삼고, 러시아는 러시아를, 캄보디아는 캄보디아를 정계로 삼는다. 그러니 다 같이 정계인 것이다.”
여기서 ‘정계’란 국가의 정체성을 확정하는 경계라는 뜻으로 이 대목은 1873년 세상을 뜬 조선의 최고 과학자인 홍대용의 글이다. 그는 명(明)을 중심으로 한 중국이 중화(中華)이며 청이 지배한 중국은 이미 중국이 아니며, 명이 사라진 동양에서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고 하면서 남들은 모두 오랑캐(夷)로 여기는 중화사상에 찌든 조선의 정신세계를 타파하려 노력했다.
홍대용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춘추(春秋)’의 역사관이라는 것도 주(周)나라 공자의 세계관이 낳은 결과일 뿐이라면서 춘추의 사관이 보편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문제를 삼았다. ‘춘추’는 천하의 중심이 되는 나라와 그 주변의 오랑캐를 구별하는 국제질서를 정당화한 역사서술인 것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과 발언은 사실상 엄청난 주류 이탈이자 사상적 반역이며 화(華)와 이(夷)의 수직 관계를 철폐해버리는 수평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런 생각은 세계가 모두 공평한 질서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이른바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는 근대적 사상으로 가는 다리를 놓은 셈이다. 이와 함께 다산 정약용이 국가개조를 위한 경세론(經世論)을 펼쳐낸 것도 모두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줄기찬 노고의 소산이었다. 사실 시간적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세종이 ‘훈민정음’의 선포 의의를 밝히면서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라고 발언했던 것을 주목하면 이 역시 이미 당대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놀라운 조선 독립의 선언이라고 할 만 하다. 세종은 이걸 토대로 조선의 미래를 바로 잡으려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들을 종합해보자면 누구나가 다 자신이 자기의 중심인 것을 인정하면서 평등하고 공정한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강렬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갈망은 어느 시대에나 지속되어야 할 바이며 기득권으로 굳어진 질서를 끊임없이 깨나가면서 진전시켜야 할 역사 발전의 동력이기도 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함께 온고창신(溫故創新)이 필요하다. 옛것에서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역사에서 모든 것을 배우는 이에게 역사는 그 보답을 반드시 해줄 것이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