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김영혁(36) 과장은 요즘 점심시간만 되면 일찌감치 연기처럼 사라지든가 아예 부하직원들이 사무실을 떠난 뒤에야 자리를 털고 나선다. 점심값 부담 때문이다. 서 너명이 간단히 식사를 해도 2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점심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건 상사나 부하직원이나 마찬가지. 서로 “밥 먹자”는 말을 최대한 아끼는 형편이다.
직장인의 금기어로 “점심약속 있으세요?”가 추가될 전망이다. 지난해 4/4분기 전국 곳곳의 외식비가 요동쳐 직장인의 지갑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 "점심약속 있으세요?" 말 끊어진 사무실
2일 행정안전부·통계청이 조사한 ‘지난해 12월 주요 서민생활물가’에 따르면 직장인의 대표 점심메뉴인 김치찌개 백반이 충북에서 5714원으로 9월에 비해 285원(5.2%) 올랐다. 찌개에 밥 한 공기를 추가하면 7000원에 육박한다.
지역별로는 울산 200원(3.9%), 강원 167원(3.0%), 부산 143원(2.7%), 경기가 125원(2.3%) 오르는 등 3개월 만에 전국 평균 64원(1.2%) 상승해 5403원이 됐다.
다진고기와 나물, 밥이 한데 어우러진 비빔밥은 영양의 균형이 잘 갖춰져 직장인에게 적합하다. 간단하고 만만하던 비빔밥도 고가의 영양식이 됐다. 전국 평균 가격이 5815원으로 56원(1.0%) 상승했다. 대구에서 250원(4.8%) 오르는 등 16개 시도 중 9곳에서 가격이 뛰었다.
냉면과 자장면은 한 그릇에 6404원과 4078원으로 석 달 전에 비해 각각 17원(0.3%)과 10원(0.3%) 올랐다.
◆ 1만원으로 두사람 끼니 해결 이젠 '옛말'
직장인이 즐겨 찾는 외식 메뉴 가운데 제자리를 지킨 것은 김밥과 삼겹살이었다. 김밥은 경기에서만 14원 올랐을 뿐 거의 변동이 없었고, 삼겹살은 환산 전 1인분 가격이 전국 평균 60원 내렸다.
아침은 거르고, 저녁은 회식이나 야근 등 불규칙한 술 자리가 반복되는 현실에서 직장인의 점심은 하루 세 끼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영양 공급원이다. 하지만 올해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하고 원료 가격이 상승하는 등 직장인의 점심 밥상은 갈수록 초라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의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홍선희(29)씨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데, 삼삼오오 모여 뜨거운 찌개를 나눠먹던 한가로움이 그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걸어서 10분 거리인 김영아(32)씨는 매일 점심시간에 집으로 종종걸음 친다. 김씨는 “밥을 잘 먹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인지, 밥을 줄이기 위해 다니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원료 값 상승으로 인해 외식 메뉴의 판매가격이 오르는 순서”이라며 “앞으로는 1만원으로 두 사람이 점심을 해결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