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베이징의 한 대기업 임원의 e-메일을 받았다.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진보와도 거리가 먼 분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9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가질 교민 간담회 참석 여부를 묻는 대사관의 문의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보통 배짱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간이 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외교 전략의 부재로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진 탓에 교민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는 간다.
사실 외교는 상대적이다. 초등학생처럼 언행을 할 게 아니라 때로는 교언영색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속으로도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어야 한다. 이른바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자세를 항상 취하는 것이 바로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외교 선진국은 다 이렇게 한다. 유럽의 라이벌 독일과 프랑스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그럼에도 현안이 생겼을 때 상대에게 비수를 겨누지 않는다. 말을 에둘러 한다. 절대 판을 깨지 않는다. 베를루스코니가 망친 이탈리아 경제 재건을 위해 소방수로 투입된 마리오 몬티 총리는 지금 마음이 급하다. 빨리 유럽경제 ‘범생이’ 독일에게 협박을 해서라도 돈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지 않고 있다.
7일 자국 북부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서는 독일만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자국 지원을 에둘러 강조했다. 절묘한 레토릭이다. 미국 역시 다르지 않다. 이란을 당장 잡아 족칠 듯 왕왕대고 있으나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이란인 13명을 구출하는 다소 엉뚱한 행동을 했다. 그러자 이란은 즉각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게 바로 외교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금 최악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간혹 세련되지 못한 언행을 하는 중국 책임 역시 크다. 그러나 결정적 피니시 블로우는 역시 지난해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날리지 않았나 싶다. 이후 중국은 한국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한다. 초등학생 같은 언행이 주는 피해는 이처럼 막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한국 외교는 희망이 없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