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두 사람이 함께 숲에 나무를 하러 갔다. 각기 도끼와 톱을 가지고 있었는데 벨 나무를 정하고 난 뒤 둘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 연장으로 먼저 해야 속도가 난다고 주장하다가 결론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그 꼴을 보고, 이러다가 날 새겠다면서 차례대로 한번 씩이라도 해보면 확인이 되지 않겠냐고 중재를 했다.
도끼를 든 농부가 먼저 나무를 찍었지만 도끼날이 무뎌 일이 제대로 진척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톱을 든 농부가 낄낄대고 비웃으면서 열심히 톱질을 해봤지만 이 역시 별 소용이 없었다. 나그네는 “우선 도끼와 톱의 날부터 세워놓고 다투든지 말든지 하시게 들”하고 말했다. 그러나 두 농부는 도끼날이 더 무디다는 둥, 어디 그게 톱이냐는 둥 서로에게 화를 내다가 결국 주먹다짐을 벌였단다.
뭐가 문제였을까? 우선 일을 하기 전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자기 공적을 내세우는 욕심부터 부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누구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이 인정으로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별 것도 아닌 게 인격과 자존심이 몽땅 걸린 문제로 변해 누구든 물러서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리 되기 전에, 아주 간단하고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단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과 또는 사죄 이후 모멸감과 인격비하의 반응이 예상된다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고개 숙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 만일 이야기 속의 두 농부 가운데 누군가가, “아, 여보게. 이거 내가 미처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할 걸 몰랐네, 용서하시게” 하는데, “거봐, 내가 뭐라 했어?”하고 잘난 척 하며 언성을 높이면 어찌될까?
아이들 교육이나, 인간관계에서나, 식당, 상점, 택시, 그 어디에서나 뭔가 문제가 있다고 곧바로 상대를 타박하고 윽박지르려 드는 버릇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예의를 잃지 않고 상대에게 여지를 주는 따뜻한 노력은 우리에게 좀 더 교육돼야 할 바가 아닌가 싶다.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너무 쉽게 상처를 내고 사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