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테마주 샀다가 한 달 동안 날린 돈만 2800만원이에요. 그 회사 임원이 주식을 내던질 때 같이 팔았어야 했는데 망설이다가 쪽박 찼습니다. 모아뒀던 돈은 다 날아가고, 아내 명의의 대출금만 남았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이제야 알겠네요.”
최근 주식시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치 테마주’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가 증권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의 일부다.
최근 금융당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뒤늦게 테마주에 올랐다가 피눈물을 흘리는 개미들이 급증하고 있다. 관련 주식들이 급등한 사이 해당 기업의 임원들은 주식을 내다 팔아 차익을 챙겼지만, 이들이 손을 턴 뒤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떨어지는 칼날을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12일 한국거래소 상장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안철수 테마주’로 알려진 S사의 고위임원은 갖고 있던 주식을 몽땅 팔아치웠다. 사흘 뒤 같은 회사의 다른 임원급 인사도 보유주식 전량을 장내에서 매도했다. 이 회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주가가 2배 가까이 올라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로 거론됐던 종목이다. 이 종목은 주식 회전율도 1년 새 6배나 뛰어올랐다. 회사 관계자들이 털어낸 주식을 개인투자자들이 모두 받아낸 셈이다.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되는 E사의 부회장과 자회사 사장도 있던 주식을 연말에 팔았다. E사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60% 넘게 올랐으며 개인투자들이 몰려든 대표적인 종목 가운데 하나다. 이들 외에도 지난해 말 주식시장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속출했다.
대주주와 회사 관계자들이 떠난 뒤 개미들에게 남은 것은 하한가를 나타내는 푸르고 선명한 화살표였다. E·B사가 새해 들어 하한가로 내려앉았고, A사를 비롯한 테마주들은 줄줄이 10%대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일부 종목들은 투자경고 종목으로도 지정됐다.
◆ 금감원 '증권사의 테마주 영업행태' 일제점검
개인투자자들은 금융당국이 조정은커녕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당국이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는 바람에 손실만 더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조정시기를 놓친 금융감독원이 뒤늦게 “증권사·유사 투자자문사의 테마주 부당 영업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 “긴급조치권을 발동해 매매정지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수를 두자 주가가 더욱 곤두박질쳐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성난 개미들은 금융당국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긴급조치권 발언 이후 투자자들의 성토로 채워지고 있다. “금감원 청사에 불을 지르겠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일부 투자자에게선 “연말 대선까지 주가가 오를 것이다. 금융당국은 방해하지 말라”는 항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현상임에도 투자자들이 속고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30여 년 동안 선거 때만 되면 똑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돼 왔다. 심지어 재탕 삼탕 이용되는 종목들도 허다하다. 문제는 항상 결말이 개미들의 피해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