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얼마 앞둬서인지 나라 전체가 양 갈래로 편가르기 하는 느낌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여당과 야당, 마초 대 페미니스트, 친 '나꼼수'와 반 '나꼼수' 등, 양극의 갈등이 첨예하고 팽팽하게
맞서 있는 느낌이다. 부정과 증오의 화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편가르기 현상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극렬한 갈등대립 때문이기보다도 그 중간의 ‘회색지대’
가 무시당할 소지 때문이다. 개개인 안에는 다양한 겹겹이의 색깔들이 혼재되어 있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무기력해지거나 무관심한 척 입을 닫거나 살짝 피해있는 게 현명한 거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회색지대의 경계적 사람들, 일명 ‘부동층’은 흔히 상상하는 것만큼 아무 생각이 없거나, 자기
일에만 이기적이거나, 기회주의자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흑백논리로 보면 상충되는 듯한 생각들을 함께 품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고 한 발짝 뒤에 물러서서 보다 합리적인 절충안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데 그들은 결정적으로, 뚜렷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양극단의 ‘집단’과 달리, 대개는 ‘개인’으로 흩어져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게 더욱 두렵다. ‘그래,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고작 나뿐이로구나. 그래, 나나 잘하자.’ 회색주의자들이 속으로 내뱉기 쉬운 말이다.
그 중의 한 명인 나는 이런 흩어진 개인들을 헐겁고 유연하지만 짜임새 있게 지탱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무한경쟁사회에서의 단순한 개인적 이익추구 보다 사회의 보편적인 삶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고 싶다.
그런데 왜 이 나라에선 정치적인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듯 사람을 답답하게 들볶는 느낌일까.
중요한 것은 “어느 쪽 편 들래” 가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에서 요기든 조기든 그 어느 궤도든, 타당한 공통분모를 함께 솎아내 보려는 의지 아닐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