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허니문푸어에 이어 '베이비푸어'라는 용어까지 신문1면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신생아 출산 준비에 일천 만원이라 빚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성인 되기 이전까지의 총체적인 양육비라면 모를까, 이건 아무리 봐도 '오버'같다.
예방접종이나 출산비용 등의 병원비용은 쉽게 바꾸기가 힘들다고 치자. 문제는 아기용품. 가격이 아무리 비싸다고 쳐도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기저귀부터 젖병,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많은 선택권이 있다. 그런데 굳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불안함'이다. 생소한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다 보니 왠지 없으면 안 될 것 같으니 불필요한 것을 사놓거나 쟁여놓고, 저렴한 것은 아이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 가급적 비싼 것을 선택한다. 특히 신생아용은 별 것도 아닌 기능을 특장점으로 내세워서 홀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둘째, '남들만큼'이다. 육아정보를 홍수처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기준점은 쉽게 '남들처럼'이 된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니 '그래도 한번뿐인데'와 '그래도 이 정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가 부추기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구매로 구체화된다. 오죽 하면, 살고 있는 집이나 몰고 다니는 자가용에 비해 '내가 좀 산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고급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말도 나올까.
마지막으로, '엄마욕심'이다. 그 물건이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기보다 엄마가 갖고 싶어서 사는 경우, 솔직히 꽤 있다. 또한 육아용품 쇼핑은 엄마들에게 열리는 새로운 쇼핑세계이자 지름신이 합리화되는 유일한 장르다. 고집스럽게 헌 물건들을 받아내고 또 그 이상으로 고집스럽게 헌 물건들을 물려주면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소통하는 게 더 기쁘지 않을까.
살림만 늘고 별로 쓰임새 없는 것들로 둘러 쌓이기 전에, 돈 많이 든다고 시장과 환경을 탓하기 전에 혹시 그 상황에 나도 일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푸어(가난)'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을 이용해 제발 사람들 겁 주지도 말고, 겁 먹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