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에딘버러 프린스에 오른 복싱 연극 한 편이 언론에 호평을 받았다. 신체극 극단 프란틱 어셈블리가 올린 '뷰티풀 번아웃'은 권투 동작을 잘 짜여진 안무로 구성하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각 인물들의 개별적인 드라마를 강조시킨 작품이다.
권투의 파괴적인 역동성과 이를 부드럽게 구성한 안무, 그리고 개개인의 사연을 독백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결합되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내 공연에서는 이미지 연극에 강점을 보인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이 맡아 독특한 질감의 작품을 선보였다.
스포츠는 연극의 소재로 적당치 않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마치 전문 운동선수처럼 보여야 하는데, 무대에서는 영상이나 편집의 도움 없이 사실 그대로를 노출하기 때문이다. '뷰티풀 번아웃'은 영웅담이나 휴먼 드라마 같은 일반적인 스포츠 극이 아닌 땀내 나는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한때 잘 나가던 복서였지만 이제는 허름한 체육관을 운영하는 바비, 잘못된 판결이 유투브를 타고 전파되면서 무능한 심판으로 낙인찍힌 스티브,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아제이, 양아치로 살아가다가 링 위에서 싸움을 해서 이기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며 기뻐하는 카메론 등.
이들은 상처가 더 많은 사람들로 권투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권투에 대한 자부심이 많았던 바비는 결국 챔피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권투로 인생 한방을 노렸던 카메론은 경기에서 식물인간이 된다. 심지어 바비에게 대항해서 보란 듯이 KO 시키고 챔피언이 된 아제이조차도 승리를 기뻐하지 못한다.
누구 하나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극은 따뜻하다. 식물인간이 돼 돌아온 카메론을 두고 그의 엄마는 더 이상 안전을 걱정할 필요 없이 늘 옆에 둘 수 있다고 자조하는 식의 절망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긍정성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진정으로 권투를 사랑했고, 권투를 하는 동안 행복해 보였다. 권투를 하는 동안 그들은 누구보다도 생기발랄했다. 엔돌핀으로 충만한 배우들이 내뿜은 열정과 에너지가 드라마의 비극성마저 상쇄했던 것이다. 26일까지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박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