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이후 등장한 할리우드 액션물 대부분은 '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투박하지만 사실적인 맨몸 격투와 거친 카메라 워크를 지향하고, 내용적인 면에서는 '살인 기계'의 뒤늦은 자기 반성 혹은 회한을 다룬다.
그러나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옛말처럼 '본' 시리즈를 능가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사실. 29일 개봉될 '세이프 하우스' 역시 그렇다.
남아공의 안전 가옥에서 하루종일 홀로 지내는 CIA 요원 매트(라이언 레이널즈)는 일상이 따분하기만 하다. 여자친구의 나라인 프랑스로 근무지를 옮기고 싶어하지만 상관은 허락하지 않는다.
CIA 베테랑 요원에서 정보 밀매꾼으로 전락한 토빈(덴젤 워싱턴)이 제발로 남아공 미국 영사관을 찾아와 자수하고, CIA 본부는 매트에게 토빈의 보호를 지시한다. 그러나 토빈이 안전 가옥으로 오자마자 알 수 없는 무리들이 습격하고, 매트는 토빈과 함께 간신히 탈출한다.
줄거리와 액션 장면의 전개는 무척 호흡이 빠르고 힘이 배어난다. 특히 남아공 월드컵 경기장과 흑인 빈민가에서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총격전과 추격전은 긴박감이 넘쳐 흐른다.
워싱턴과 레이널즈의 연기 호흡도 수준급이다. 워싱턴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던 '트레이닝 데이'에서의 야수같은 눈빛과 몸놀림으로 백전노장의 위용을 과시한다.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는 레이널즈는 패기만만한 새내기의 불안한 내면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그러나 몇몇 단점들이 이같은 장점들을 가리는 게 아쉽다. 등장인물들의 관계 설정 및 성격 변화는 그리 신선하지 않고, 무엇보다 중반 이후부터 서너 단계를 수시로 건너뛰는 내용의 흐름이 거칠기만 하다. 또 '반전 아닌 반전'도 '옥에 티'다.
여운을 남기는 킬링타임용 무비가 목표였지만, 중간 지점에서 멈춰선 듯한 느낌이다. '본' 시리즈가 나온지 어느덧 10년, 이제는 할리우드 액션 지형도가 또 한번 바뀔 시점이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