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과연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더란 말이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청춘의 기막힌 사연에 객석도 눈물바다요, 이 변사 또한 우노니."
무성 영화 시대에 최고 인기 연예인은 변사였다. 변사가 그날 현장에서 눈물과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원래의 줄거리보다 더 중요했다.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우리 영화사에서도 최초의 무성영화가 문화재 등록이 됐다. 2007년에 발견된 이 필름은 일제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문예봉이 출연한 1936년 '미몽'보다 2년이 앞선 1934년 작 '청춘의 십자로'이다. 물론 이보다 전에 제작된 무성영화들도 있었으나 현재 남은 자료로 가장 오래된 이 영화는 신파극단 혁신단의 배우출신인 안종화 감독의 작품으로서, 지금은 까맣게 잊혔으나 나윤규를 잇는 대표적인 액션배우 이원용, '아리랑'의 신일선, 가수이자 배우였던 김연실 등이 출연한다.
7년 동안 데릴사위로 있던 한 청년이 배신의 상처를 안고 경성으로 올라와 경성역 수하물 운반부로 지내다 알게 된 한 처녀와의 사랑이 기로에 서게 되고, 사랑을 가로막은 악당들을 처리하는 마무리가 있는 신파극이다. 영화의 내용은 지금보자면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성과 관련한 윤리관 그리고 친일파임이 분명한 최상류 계급의 유유자적한 삶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도 아울러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그때 골프를 치러 다닌다.
1934년이면 일제가 군국주의로 확고히 방향을 잡은 이후라는 점에서 '청춘의 십자로'은 그걸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지만 힘들게 살았던 당대의 청춘들이 직면했던 삶의 행로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경성역의 수하물 운반부라고 설정된 것이나 주인공의 동생이 무일푼으로 올라와 바에서 돈 많은 친일파 놈팽이의 손길에 유혹받는 모습 등은 식민지 시대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들의 고단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상영 전과 중간에 공연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영화 내내 연주와 함께 변사의 흥겨운 해설이 펼쳐져 하나의 독자적인 무대로 선을 보였다.
무성영화와 공연무대의 결합, 충분히 대중적 인기를 모을 수 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갈채를 보냈다. '새로운 재해석'은 이래서 언제나 필요해진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