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왕인 시대다. 고객은 여러 다양한 서비스와 혜택을 받고, 고충은 최선을 다해 신속히 응대돼야 한다. 마치 안 그러면 고객이 바로 마음을 바꿀 것처럼. 과연 그럴까? 어째 고객이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제품 그 자체인데 별도의 '부록'들을 가지고 경쟁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허울 뿐인 서비스는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다.
가령 책이 총알스피드로 당일 도착해도 문 앞에 휙 내던지고 가면 슬프다. 책 좀 늦게 읽어도 되니 소중한 책을 그리 던지다니. 마트 계산대의 직원이 억지미소로 '멤버쉽카드, 할부, 현금영수증, 비닐봉지'의 여부를 다다다 물은 후, 내가 산 물건들을 뒤로 착착 밀어내며 비닐봉지를 훽 뜯어 어깨 너머로 던질 때, 나는 그저 위 속에 집어넣을 사료를 사러 온 동물이 된 느낌이다. 백화점에서 '뭐 필요한 게 없냐'며 계속 졸졸 따라다닐 땐 불필요한 강매를 강요당한 기분이다. 실제로 분위기상 물건을 구입했다가 환불을 하러 갔더니 죄인도 이런 죄인이 없더라. 은행창구에서 볼 일을 보고 나면 은행원이 왜 일어서서 배웅하는 지도 모르겠다. 일어섰을 때의 표정이 '어서 빨리 앉을 수 있게 돌아가달라'는 것 같아 동전 챙기는 내 손가락만 다급해진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허리를 너무 낮게 숙인 여성안내원들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불쾌하기 짝이 없다.
기업주, 직원, 그리고 소비자의 관계 속에서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것은 '신뢰'일 뿐. 소비자에게 진정 필요한 제품을 만든다는 자신감, 그런 제품을 판매한다는 자부심, 그리고 내가 옳은 소비를 하고 있다는 확신. 이것만이 기쁨을 줄 뿐, 나머지는 '눈 가리고 아웅'의 제스처다. 그러한 제스처는 나쁜 소비자들에게만 먹히고, 또 만들 뿐이니 역으로 돌아오는 게 '감정노동'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한 서비스는 주는 사람이 기분 좋을 때,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 법. 그리고 서비스를 주는 사람이 기분 좋으려면 그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서비스, 예로 근무시간이나 월급부터가 기분이 좋아야 한다. 기업이 직원에게 사랑을 보일 때 직원의 '사랑합니다, 고갱님~'도 먹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