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신작 '크로니클'은 예상과 다른 영화다.
필자는 '엑스맨' '푸시'처럼 초능력자를 다룬 역동적 SF영화로 예상했다. 감상 결과, 성장영화였다. 주인공들은 초능력이란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성인이 가진 보편적 문제인 관계의 혼란을 배우며 커 나간다. 사실 관객들은 실망했다. 기발한 상상력도 신나는 모험도 화끈한 액션도 기대수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크로니클'은 성장기 십대 세 소년에 눈을 맞추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왜 지금 같은 흥행수준에 머물까. 해답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나온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주인공 A에 대해 B가 충고하는 대사에 쓰인 '휴브리스(Hubris)'다.
휴브리스는 영국의 인류학자 토인비가 역사 해석학 용어로 쓴 단어로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스스로의 과신, 자만이 지나쳐서 내부적으로 붕괴했다는 해석과 일맥상통한다.
이 단어가 현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의 참모들은 '3H'에 대한 경고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휴브리스였다. 그 때까지 승승장구했던 클린턴의 능력과 방법에 대한 경계를 충고한 것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크로니클 배급사는 국내 상영을 위한 홍보마케팅에서 휴브리스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할리우드에서 흥행을 인정받았고, 수많은 개봉관을 잡았고, SF 또는 초능력이란 환타지를 믿은 것 같다.
하지만 결과가 보여주듯 관람객은 외형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외형이 강조되는 것에 의심을 품고, 실체에 대한 평가 기회마저 생략해버렸다. 이런 면에서 크로니클의 홍보를 주인공이 지닌 성장기 고통에 맞췄다면 더 나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휴브리스란 함정에 빠지지 않을 거라 자신하기는 참 힘들다. 초능력이라도 생기면 또 몰라도. /박상진 이사(글로벌 트렌드연구소 '트렌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