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구촌 언론에서는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 국가들이 유럽과 미국을 대체해 세계 경제를 이끌 것이라는 판단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세안 10개국 중 6개국인 이른바 'VIP+MTS'(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우선 이 국가들의 수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의 2배 가까운 7.4%에 이른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전체 인구도 6억 명에 가깝다. 중국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9억 명 가까운 중국의 농민이 그다지 구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 시장이 더 매력적이라고 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국가들은 전 세계 팜 오일의 87%, 천연고무의 80%를 생산하는 자원의 보고로 불린다. 아시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의 45%도 담당한다. 한마디로 러시아, 인도, 브라질은 말할 것 없고 중국보다도 더 괜찮은 시장으로 봐도 괜찮다. 더 나아간다면 이 국가들이 브릭스를 제치고 향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바로 이 때문에 프랑스와 미국이 과거 베트남에 그토록 미련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외신에 의하면 조만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 회원국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아세안 인프라 펀드(AIF)가 공식 출범한다고 한다. 빠르면 5월 초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 회의에서 발족, 회원국 간 인프라 개발 격차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는 것이 외신의 전언이다.
VIP+MTS 국가들이 펀드를 좌우할 주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현지의 막강한 화교 네트워크, 일본은 ODA(정부개발원조) 금액 증액 검토를 통해 은근하게 우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양국 모두 이 국가들을 대단히 잠재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이 이와 관련해 어떤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은 없다. 자원 외교를 부르짖는 국가의 모습 역시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외교·안보 강국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권이라도 챙기려면 이들 국가에 눈을 돌리는 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보인다. 주는 떡도 못 먹으면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