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인권에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견지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경우까지 있었다.
7일 망명지 미국에서 76세를 일기로 갑자기 사망한 반체제 천체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에 대한 처리 문제가 1989년 6월 4일의 톈안먼 사태 직후 중국 정부와의 사이에 불거졌을 때 대표적으로 그랬다. 베이징 자국 대사관에 피신한 그를 무려 13개월이나 보호한 다음 데리고 갔다. 중국으로서는 치욕적인 일이었으나 당시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던 미국이 요즘은 영 이상하다. 중국 인권에 대해 완전 입을 닫은 것은 아니나 비판의 강도가 당최 말이 아니다. 마치 의무적으로 하지 않느냐는 느낌까지 줄 정도라고 해도 좋다. 왕리쥔(王立軍) 충칭 부시장이 쓰촨성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한 2월 초의 긴박했던 상황을 리바이벌해보면 진짜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할머니로 변장해 들어갔을 만큼 절박했을 그의 망명을 거부한 것이다. 더구나 미국 측은 그가 중국 정부에 신병이 인도될 경우 최고 사형, 최소 20년 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3년 전 사태의 데자뷰가 보여준 결과는 이처럼 당시와는 너무 달랐다. 앞으로는 더할 개연성도 농후하다.
미국의 이런 자세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8년 터진 금융 위기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의 국력이 역전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상기해 봐도 나름 이해는 된다. 또 미국은 중국이 흔들어대는 달러 그득한 돈주머니가 절실히 필요하다. 게다가 이미 국채 판매를 통해 중국에 1조2000억 달러의 빚도 지고 있다. 중국을 직시하지 못한 채 가재미눈으로 눈치를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과거 중국이 미국에 그랬듯 이제 미국이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중국의 기세를 제어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당장 탈북자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처리해달라는 당부를 하기 쉽지 않게 된다. 미국이 과거 세계 경찰을 분명하게 자처하던 때 보여준 막무가내 정도의 행보는 굳이 하지 않더라도 자존심만은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