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발표한 '팬플레이션(Panflation)'이 화제다.
팬플레이션은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상승을 일으키는 인플레이션이 사회, 정치, 문화 등 생활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현상을 정의한 용어다. 무서운 점은 대부분의 팬플레이션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민 메뉴가 돼버린 피자 사이즈의 경우 레귤러(Regular)가 스몰(Small)을 대신한 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보통 피자'가 '작은 피자'인 셈이다. 스타벅스의 커피사이즈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톨(Tall)'이 가장 작은 메뉴다. '키가 큰' 사이즈가 '최소' 사이즈인 것이다.
학력과 학위에서 '상(上)'과 '하(下)'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대학졸업장은 운전면허증 정도로, 석사나 박사 학위는 취직을 위한 전문자격증으로 폄하됐다.
정치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4.11 총선에서 '투표율 70%'를 독려하는 유명인들의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의 '아이유 코스프레', 개그맨 김제동의 '한달 내 결혼', 작가 이외수의 '삭발' 등이 선언됐다. 당초 투표율의 증가는 시민사회의 성장이란 의미를 가졌지만 이젠 유명인들의 식상한 약속으로 전락되는 모습이다.
인류학적 측면에서 본 팬플레이션은 얘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피자나 커피 사이즈에서 스몰이 없어진 것은 소비자의 섭취량이 달려져서가 아닐까. 또한 평균 신장과 몸무게, 수명의 변화처럼 지적능력과 학습능력의 수치가 높아졌으니 배움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것은 아닐까. 정치발언을 일삼는 유명인에게 공감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젊은 층이 가진 정치참여 형태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패션에서 지금의 55사이즈와 70년대의 55사이즈는 실측했을 때 그 수치는 다르나, 55사이즈가 그 시대의 평균이라는 점에서는 같다는 점이다. 팬플레이션은 비정상적 현상을 분석한 용어가 아니라 현재를 제대로 해석한 트렌드라는 생각이다. /박상진 대표(글로벌 트렌드 연구소 '트렌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