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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뷰] '커밍아웃' 나라와 '보이콧' 나라

알고 지내던 30대 후반의 연극연출가는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다국적 극단을 결성했을 때의 경험을 털어놓던 중 "10명의 단원들 가운데 7명이 동성애자였다. 동성 결혼 커플도 두 쌍이나 있었는데, 이성애자였던 내가 오히려 소수자였다"며 흥겹게 파안대소했다. 그 만큼 미국 예술계에서 동성애는 흔하디 흔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강력한 '금기'다. 우리 문화계에도 알게 모르게 동성자들이 꽤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털어놓지 않는다.

얼마전 만났던 한 클래식 연주자도 그랬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이지만, 동성애 사실은 세상에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그것이 알려지는 순간, '급추락'할 거라는 공포가 내면에 항상 잠재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이유탓인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사실상 부부 관계였던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와 앤절리나 졸리가 "법적으로 결혼할 것"이라는 외신을 접하면서 그 연주자의 '그늘진 얼굴'이 겹친다. 이들은 "동성애자들이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결혼을 유보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입양한 자녀들이 부모의 법적 결혼을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로 그 다짐을 끝까지 지키진 못한 것같다.

최근 타계한 20세기 미국 문단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도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한몫을 했던 인물이었다. 1929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틱 증상과 심한 관절염으로 평생을 고생했던, 세 명의 자식을 뒀지만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남편과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레즈비언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27일 부음 소식을 전하면서 "유태인이며 레즈비언이었던 그는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꿨다"고 높이 평가했다.

리치부터 최근의 브란젤리나에 이르기까지,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미국 사회의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은 죄의식의 굴레에서 한걸음씩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클래식 연주자가 환히 웃을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문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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