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위치에 오른 이들은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정상에 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내려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에 대한 준비에 있다. 첼시의 스트라이커 디디에 그로그바는 그런 인생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상에 섰을 때 물러났다.
첼시는 22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드로그바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한 지 불과 3일 만의 일이었다. 드로그바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터트리며 첼시의 승부차기 승리를 견인했다. 선방을 펼친 골키퍼 페트르 체흐와 더불어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인정받았다.
사실 드로그바는 그 동안 숙청의 대상으로 꼽혔다. 많은 나이와 너무나 확고한 캐릭터로 인해 리빌딩을 추진하는 감독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러나 올 시즌 중반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경질된 뒤 흔들리는 첼시를 구한 것은 드로그바의 활약 덕분이었다.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원했던 유럽 정복까지 달성하며 그의 입지는 재계약 1순위로 바꼈다.
하지만 드로그바는 스스로의 의지로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첼시에서 이룬 성과가 매우 자랑스럽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시간이 왔다"며 첼시를 떠나는 이유를 밝혔다. 2004년 첼시에 입단, 338경기에서 157골을 넣었고 리그 우승 4회를 비롯, 총 12회의 우승 트로피를 안긴 영웅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드로그바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예상은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다. 첼시에서 함께 활약한 니콜라 아넬카가 선수 겸 감독으로 있는 중국의 상하이 선화로 간다는 루머가 가장 무성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에는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 등이 만 33세의 나이에도 여전한 골결정력을 보여주는 그를 원한다는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와중에 찾는 드로그바의 마지막 도전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