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이 19년간의 파란만장 야구인생을 뒤로 하고 전설로 돌아갔다. 26일 광주구장에서 펼쳐진 은퇴식은 성대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이종범의 은퇴를 아쉬워하면서도 인생의 새 출발을 기원했다.
그는 현역시절 다른 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선수였다. 93년 해태에 입단해 보여준 야구는 가히 충격이었다. 승부하면 득점타로 두들기고, 승부를 피하면 3루까지 자동 도루였다. 어차피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선수였다. 홈런도 잘 치는 슬러거였다. 어깨도 강했고, 폭넓은 수비범위를 갖춘 무결점 만능 선수였다. 포수가 없으면 포수 마스크도 썼다.
승부처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팀이 필요할 때 한 점을 뽑아주는 능력이 탁월했다. 방망이가 되지 않으면 발로 만들었다. 상대의 허술한 틈이 생기면 놓치지 않고 다음 베이스를 파고 들었다. 그래서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고통의 시기는 98년부터 2001년 6월까지 주니치 시절이었다. 부상과 부진에 빠져 2군 생활도 경험했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이종범은 "오프 시즌에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훈련을 했어야 했다. 악착같이 했다면 일본에서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고 후회했다.
2006년과 2007년 부진이 겹치며 은퇴 위기에 몰렸다. 두 번째의 시련에 괴로웠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2009년 주전으로 복귀해 통산 10번째 우승을 타이거즈 팬들에게 선사했다. 우승 직후 흘린 진한 눈물은 쓰디쓴 좌절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그는 눈물을 자주 흘린다. 아내 정정민 씨와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자위가 붉어진다. 자신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가족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정적인데다 인생의 굴곡진 면을 지켜봐서인지 팬들이 이종범을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그는 신인시절부터 남몰래 고아원을 찾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후배들을 잘 챙기고 대스타인데도 기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잘나갈 때부터 스승과 선배들도 잘 모셨다. 그에게서 자만심이란 단어를 읽기 어렵다. 아무리 봐도 인간미도 야구만큼이나 완벽하다. 과연 이 같은 스타는 다시 출현할 것인가. /OSEN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