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누군가 내게 '당신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진정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기억이 있냐'고 물었다. 예상 외의 질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정 사랑 받은 기억을 갖고 있을까.
'사랑 받은 기억'이라는 건 상당히 주관적이고 편집적인 개념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왜 기억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한 사람이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보노라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여덟 번 혼나고 두 번 칭찬 받은 어린이는 각양 각색의 어른으로 자라난다. 여덟 번 혼난 것을 가장 크게 기억하는 어린이, 두번 칭찬 받은 것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린이, 혼난 것만 기억하는 어린이. 그들의 향후는 몹시 다를 것이다.
대체 어떤 원리로 기억을 선택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사건들을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기억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나는 '사랑 받는 나'보다 '사랑하는 나'에게 더 경도됐던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욕망이 치솟으면 케세라세라를 읊는 정신의 평온함 보다 되는대로 힘껏 추구하며 애닳아 하는 쪽이 더 입에 맞았다. 실제로 쫓는 만큼 손에 잡히기도 했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사랑 받지 못했다거나, 사랑 받은 기억을 선택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저 철저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사랑을 하든, 사랑을 받든 나 자신의 감정과 감각들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반대로 타인에게 내 감정을 미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나를 인정 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진정 사랑 받아 본 적은? 이것은 당신이 살아가면서 한번은 반드시 마주 칠 질문이다. 흔쾌히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결국 타인에게 사랑(인정) 받기 위해서 혹은 스스로를 사랑(인정)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있는 거니까.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