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은 분명 다르다. 이상은 현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바람직하나 눈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누구나 다 이상이라는 것을 줄기차게 쫓지 않나 싶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 중에 마르크시즘만큼 이상적인 것은 드물다. 흔히 공산주의내지 사회주의와 동의어로 일컬어지는 이 이념의 뼈대는 솔직히 이상이라는 말로도 설명을 하기 부족하다. 굳이 찾아보자면 환상적이라는 말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이상은 지구상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는 중국에서조차 마르크시즘의 기본적인 이상이 구시대의 유물이 됐으니 구구한 설명도 필요 없다. 공동 생산, 공동 배분이라는 이상 뒤에 숨은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간과한 탓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164년이 되는 지금 다시 이 마르크시즘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각국에서 이런 분위기가 더욱 팽배하다는 것이 유력 외신들의 전언이다.
5일부터 9일까지 런던에서 영국 노동당 주최로 열린 '마르크시즘 2012'라는 행사에 젊은 층을 포함한 수천 명의 좌파 지식인들이 운집한 것은 무엇보다 이런 현실을 잘 말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론' 같은 마르크시즘의 고전들도 얼마 전부터 느닷없이 베스트셀러로 등장, 전 세계 출판계에 이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는 추악하고 사회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선입견을 감안하면 최근 현상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르크시즘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이미 검증됐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유혈도 흘렀다. 여기에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마르크시즘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괴물에 가깝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마르크스의 유령이 지구촌을 다시 배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악의 경우 냉전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세계 안보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상은 허상일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마르크시즘의 부활 역시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차선의 답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이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