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인하를 경기활성화 기대감이 아닌, 통화당국이 현 상황을 예상보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한국경제 위기론이 급부상했다. 한은은 다음날인 13일에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의 3.5%에서 무려 0.5%포인트 내려잡기도 했다.
여기에 시중에 풀린 돈은 많지만 이것이 돌지 않아 무용지물이라는 분석과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 등이 겹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재정위기를 거쳐 이제는 한국경제 불황으로 전이됐다는 걱정이 커졌다. 다만 시장에서는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이 미국, 유럽, 중국 등 대외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이들 국가들의 해법찾기에 주목하면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통화정책당국이 금리인하와 국공채 매입 등을 통해 자본시장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돈은 돌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원통화의 통화창출력을 의미하는 통화승수가 최근 10년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 5월 기준 통화승수는 21.9로 2000년대 들어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통화승수인 26.2와 비교해도 4.3포인트나 낮아졌다. 이는 한국은행 등에서 돈을 풀거나 기준금리를 낮춰도 시중은행이 대출에 소극적이고, 기업은 설비투자를 적게 했고, 가계 역시 소비를 늘리지 않아 그만큼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투자가 위축됐다는 것은 상반기 증시의 거래대금이 예년에 비해 반토막 난 것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3조8012억원으로 4조원을 밑돌았다. 거래대금이 4조원을 밑돈 것은 2007년 3월 이래로 5년4개월 만에 처음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7%대로 떨어진 것도 우려를 더 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13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GDP증가율이 8%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9년 2분기 이후 3년만이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 역시 0.4%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증가율은 1.7%포인트 하락 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의 대 중국 수출 경로를 통해 '차이나 리스크'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국경제의 위기가 대외 요인에서 불거진 만큼 정부가 나서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금리는 내릴 만큼 내렸고 재정도 이미 바닥난데다, 불황이라 세금을 더 걷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이는 현재 한국경제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의 행보에 촉각을 곤수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17일과 18일 예정된 미국 연준의 베이지북(경제동향보고서) 발표와 버냉키 연준의장의 의회연설, 20일 열리는 유럽연합(EU)재무장관 회의을 주목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베이지북 발표를 기점으로 미국 연준의 추가 양적 완화 조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한편 EU재무장관 회의로 유럽재정위기에 대한 후속조치들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또 중국경기가 이제 저점을 찍고 하반기에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선성인 연구원은 "중국경제에 정책효과가 반영되며 소비와 투자, 유동성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며 "통화 및 재정정책 효과 반영 이 가시화하면서 하반기에는 8%대 성장율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지성기자 lazyhand@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