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해커들의 모임인 대형은 대한전력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가해 전력을 마비시킨다. 신호등이 꺼진 대낮 도로에는 교통사고가 줄을 잇고, 병원 수술실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바람에 응급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대규모 정전 사태의 여파는 원자력 발전소를 폭발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SBS 수목극 '유령'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 설정이지만 사실적인 묘사로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국가 기간시설을 뒤흔드는 사건은 아니지만, 최근 우리 대중 가요계에는 체제와 대외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편법 음원 거래로 차트를 조작하는 이른바 '음원 사재기' 문제가 그것이다. 과거 오프라인 중심의 시장에서 제작자가 자사 가수의 음반을 다량 구입해 판매량을 높이던 관행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억대의 자금을 받은 브로커가 중국에 서버를 두고 새벽 시간대에 수만 개의 유령 아이디로 청탁받은 가수의 곡을 다운로드 받아 순위를 높인다. 심지어 일부 기획사는 해커까지 고용해 음원 유통사의 시스템을 조작한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음원 서열이 가수의 몸값과 인기도를 정하는 척도가 된 만큼 더 큰 미래 수익을 위한 이 같은 편법과 불법은 공공연한 업계 관행을 넘어 '안 하면 나만 손해보는' 필요악이 되고 있다.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할 가수와 노래가 제대로 인정을 못 받고, 실력 있는 신인이 설 자리조차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뿐만 아니라 세계가 K-팝을 주목하는 시대에 제 살 깎기식 진흙탕 싸움은 문화 신뢰도 하락과 국가적 망신을 불러올 수 있다.
음반 제작자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원 유통사들은 소비자와 제작자가 모두 믿을 만한 공정거래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역시 무제한 스트리밍 제한 등 사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우현(소지섭) 경위와 '미친 소' 권혁주(곽도원) 경감이 출동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되지 않겠나./suno@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