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의 로빈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메시, 호날두, 즐라탄과 함께 유럽 빅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세계 최고의 왼발잡이라는 그의 맹활약에 박주영의 출전 기회가 원천 봉쇄될 정도였다.
그런 판 페르시가 7월 초 팬들을 놀라게 할 깜짝 발표를 했다. 유로 2012가 끝난 뒤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아스널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 계약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사실상 이적을 선언한 셈이다.
아스널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 여름 판 페르시를 이적시키기 않으면 1년 뒤엔 이적료 한푼 없이 다른 팀으로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이적을 시키면 팀의 위상과 전력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판 페르시의 잔류를 바란다며 재계약을 호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선수는 더 많은 연봉,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는 강한 동료들을 원하는데 소속팀은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아스널은 맨유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양대 산맥이었다. 하지만 첼시, 그리고 최근에는 맨시티까지 치고 올라오며 점점 우승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2003~2004시즌 무패로 리그를 제패한 뒤 그들이 들어올린 우승트로피는 FA컵(2005)에 불과했다. 무려 7년째 트로피 가뭄이다.
그 사이 핵심 선수들은 차례로 떠나갔다. 티에리 앙리를 시작으로 애슐리 콜,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마티유 플라미니, 사미르 나스리 등이 더 많은 연봉과 강한 동료를 제시한 우승 후보로 떠났다. 지난 여름에는 주장이자 팀의 미래였던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바르셀로나로 보내야 했다.
아스널은 더 이상 스타급 선수를 사오는 팀이 아닌, 유망한 선수를 사서 더 큰 클럽에 파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만일 올 여름 판 페르시마저 떠난다면 그런 이미지는 확고해진다. 판 페르시 파문은 아스널이 우승에 대한 야망과 지원이 없는 클럽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 우울한 자화상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