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첫사랑과 환상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낸 이병헌·이은주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은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른다. 인우의 우산 속으로 태희가 뛰어 들어오면서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둘은 오랜 기다림과 설렘 속에 사랑을 하지만 태희의 사고로 이별을 맞는다.
십여 년이 흘러 학교 선생님이 된 인우는 제자인 현빈에게 인우의 흔적을 읽는다. 그리고 서로를 기억한 둘은 함께할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벼랑 끝에 선다. 영화 속 번지점프대가 벼랑으로 바뀌었다.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는 넓은 무대에서 막을 이용해 프레임을 이동시키면서 과거와 현재 시점을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조명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상징적이며 미니멀한 무대는 서정적이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적절했다.
윌 애른슨의 음악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특히 테마 곡인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은 잔흔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아름다운 사랑으로 치환하는 과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연인들보다 절실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뛰어넘어 다음 생의 사랑을 믿는 이들에게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성의 선생과 제자의 사랑이라는, 사회적으로 높은 금기의 벽은 오히려 운명적 사랑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장벽을 넘어섰을 때 이야기다.
뮤지컬은 그 장벽을 넘지 못한다. 인우가 현빈에게 끌리고 집착하는 이유는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공감되지 않아 여전히 도덕적 금기에서 비롯한 불편함이 남았다.
잔잔한 서정으로만 밀도 있게 밀고 갔지만 불편함을 넘어서기엔 힘이 부족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선 강한 판타지(마법)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을 보며 영화 '은교'가 생각났다. 이 작품에선 박해일과 김고은의 사랑이 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선 인우가 현빈에게 집착할 때 아름답거나 안타깝지 않고 불편했다.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감동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이라 할지라도 소용없다.
창작 초연이고 여러 장점이 많은 작품이므로 이후 발전된 모습을 기대해본다. 9월 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