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의 피크시즌이 찾아왔다. 참 희한한 것은 휴가는 분명 쉬러 가는 것인데 휴가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는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다녀와야 잘 놀다 왔다고 소문날까, 설레면서도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휴가를 간다는 것은 평소와는 달리 큰 마음 먹고 여가비용을 쓰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짜가 아니다 보니 이것이 피로유발을 한다. 가령 저렴한 패키지여행을 갔다고 치자. 돈을 아끼느라 그랬지만 막상 자신이 상상하던 그 모든 것보다 그 '이하'를 보게 된다면 이럴 바엔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느껴져 되레 스트레스만 받아서 돌아오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 초라함을 느끼는 건 덤이다. 한 편, 반대로 이번에는 큰 마음 먹고 내 형편에 비해 조금 사치해서 휴가를 다녀온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과용한 만큼 기대치는 높아지고, 그만큼을 못 얻으면 실망감과 배신감이 괴롭힌다. 더불어 다녀와서는 고작 그 며칠을 쉬기 위해 과소비한 것이 후회스러워 긴축재정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어 휴가 후 기분전환은커녕 울적해진다.
일년 내내 힘들게 일하는 우리들이니 일년에 단 한 번 있는 여름휴가에 의미부여를 하는 건 사실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계획을 짜든 백 프로 만족하는 휴가는 애초에 포기하자. 휴가엔 '본전'과 '효율', 그리고 '합리성'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기로 하자. 나사를 적당히 풀고 정신을 헐겁게 가지는 '될 대로 되라. 난 할 만큼 했다.'의 정신, 그것이 휴가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모든 여행과 휴가에는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나는 극히 저렴했던 한 휴양지 패키지여행에서 맛 본 난생 최고로 조악한 아침식사를 그래도 배고프다며 파트너와 허겁지겁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당시의 우스꽝스럽고 흥겹던 식욕과, 내 형편으로는 턱 없이 비쌌던 한 숙소에서 느꼈던 황홀한 침대 시트의 감촉에 대한 감격을 지금도 똑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추억하고 있다. 여행 짐을 쌀 때 여유와 유머의 마음가짐을 부디 잊지 마시길.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