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봉의 도시산책
'서촌이냐 세종마을이냐' 씁쓸한 논쟁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이 땅에 태어난 건 지금으로부터 꼭 615년 전의 일이다. 준수방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바로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지금의 종로구 통인동 일대다.
그런데 최근 통인동을 비롯해 근처의 청운동과 효자동, 사직동, 옥인동 등 경복궁 서쪽 동네에서 때 아닌 '마을이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종로구청이 이 지역을 '세종마을'이라 부르겠다며 새 마을이름 선포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중순에는 통인시장 서쪽 입구에 '세종마루'라는 정자까지 새로 지어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애당초 정자이름 공모에서 1위로 꼽힌 건 '세종마루'가 아니라 '통인정'이었기 때문인데, 종로구청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 선호도 조사' 결과를 이유로 공모에서 2위를 차지한 세종마루를 대뜸 정자 이름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지역에서 한옥 보존운동 등을 하고 있는 한 단체는 "주민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이 동네를 서촌으로 알고 있다"며 "마을 이름을 관청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단체의 주장대로 이 지역을 서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느냐? 사실 그에 대해 명쾌히 "그렇다"고 답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한때 이 지역에 있던 다섯 군데의 활쏘기 연습장, 즉 사직동의 대송정과 누상동의 풍소정, 필운동의 등과정, 옥동의 등룡정, 삼청동의 운룡정 등을 합해 '서촌오사정'으로 불렀다고 한 데에서, 이 동네를 '서촌'이라 표기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촌'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경우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서촌은 중구의 정동이나 서소문 등 청계천의 서쪽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북촌이나 남촌, 서촌 등 동네를 구분하는 기준은 경복궁이 아니라 '청계천'이었던 탓이다. 그런 면에서 통인동 등 현재 마을이름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이름은 '상촌'이나 '웃대' 정도가 맞는 말이다.
세종이라는 위인의 이름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주민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따를 것인가... 서촌이든 세종마을이든 간에 과연 관청과 주민 사이에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이름 하나 어떻게 된다고 해서 주민들의 삶마저 바뀌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정하는 과정은 한국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의 수준을 낱낱이 보여주는 한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