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암흑기가 언제였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1993년 겨울부터1994년 봄까지를 콕 집어 이야기할 것 같다. 당시에 찍은 내 사진을 보면 나는 신경증적 질환을 앓는 여자 마냥 지저분한 커트머리에 창백한 낯빛, 그리고 결코 웃지 않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환자였고 당시 나는 요양 차, 부모님이 거주하는 루마니아에서 지냈다. 스물 두 살에 요양은 누가 봐도 명백한 패배였고 하필이면 요양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동유럽의 루마니아라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은 애써 향후의 루마니아에서의 생활에 대해 밝게 브리핑을 해줬지만 창 밖의 풍경은 암울했다. 행인들의 표정은 어둡고 옷차림은 칙칙하고 군데군데 들개들의 시체가 보였다.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강압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이니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몸도 안 좋았고, 치안도 안 좋았으니 매일 아침 일어나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동유럽의 겨울은 매서웠고 눈은 자주 묵직하게 내렸다. 그 긴 겨울을 주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보냈다. 묵묵히 견뎌내는 일상을 담은 작가의 단편들은 루마니아라는 나라와 꽤 잘 어울렸다. 영원할 것 같은 겨울이 끝나고 이듬해 봄이 찾아와 불가리아 국경 인접한 흑해로 마지막 가족여행을 떠났지만 나름 휴양지 호텔이라는 그 곳도 차갑고 냉기서린 게 무언가 세상의 끝 같은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나는 요새도 가끔 악몽을 꾼다. 일어나면 꿈의 내용은 생각 안 나도 몸만은 차가운 흑해 물에 빠져 언 듯한 축축하고 서늘한 촉감이 있다. 그럴 때마다 루마니아에서 보낸 그 한 철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구나 인생에서 '죽은 듯이' 살거나 '묵혀내야' 하는 시간이 있음을 생각한다. 세월이 흘렀으니 그 후 루마니아는 꽤 변했겠지. 하지만 유독 그런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다시 갈 일은 없겠지, 싶은 확신이 드는 장소 말이다. 요즘의 정치풍경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풍경이 있다고.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