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과 대만에 밀려 위기에 몰린 반도체 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정부와 기업들이 공동출자해 개별 기업 지원에 나서는 것은 일본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경영난에 빠진 일본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 반도체 대기업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를 미국 투자펀드 대신 일본 정부와 일본 제조업체들이 관·민 합동펀드인 '산업혁신기구'를 만들어 공동 인수에 나설 방침이다.
도요타자동차와 닛산자동차, 혼다, 파나소닉, 캐논 등 일본 제조업체는 정부 산하 산업혁신기구와 함께 1000억엔(약 1조 4500억원) 이상을 공동 출자해 르네사스를 매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반도체의 주요 고객인 일본의 제조업체들이 르네사스를 지원해 반도체의 안정 조달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다. 산업혁신기구가 구체적인 출자안을 만들어 다음달 르네사스 대주주인 NEC,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3사와 주거래은행에 정식 제안할 예정이다.
앞서 미국 투자펀드 KKR은 지난달말 시스템LSI 사업 부진으로 경영난에 빠진 르네사스를 1000억 엔에 매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주주나 주거래은행은 당초 KKR에 르네사스를 팔 예정이었지만, KKR이 출자 조건으로 추가 융자 등을 요청하자 자국 업체에 회사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르네사스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빠질 수 없는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를 중심으로 자동차에서 DVD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에 반도체를 공급해왔다. 특히 마이콘 반도체는 세계 시장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르네사스의 최대 고객 중에는 애플, 소니와 함께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전략 품목의 수요 부진과 함께 동일본 대지진 이후 경영난에 처하면서 지난 2011 회계연도 매출이 22% 줄어들어 626억엔 적자를 냈고, 2012 회계연도에도 1500억엔 적자를 낼 전망이다.
르네사스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전체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1만 4000명을 감원하고 전국의 반도체 공장 19곳중 중 절반을 매각하거나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대규모 집적회로(LSI) 사업의 주요거점인 야마가타현 쓰루오카 공장은 대만 기업에 매각할 방침이며 LSI 사업통합을 위해 후지쓰ㆍ파나소닉 등과 협상도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