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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변사의 추억과 단성사의 존망



서울 종로3가에 가면 우리나라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극장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907년에 설립된 단성사로 현재 건물은 지난 2005년 멀티플렉스 형태로 새로 지은 것이다.

개관 당시만 하더라도 탈춤이나 창극 등이 대세이던 시절이다 보니 영화관 개관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당시 영화의 형식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서로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던 자동차들이 결국 충돌해 자동차가 멈추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면, 자동차에 타고 있던 배우들이 화면 속에서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 무대 위에서 실제로 격투를 벌이는 이른바 '키노 드라마'였다.

연극이 영화라는 형식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의 풍경으로, 키노드라마에 이어 무성영화가 나오면서부터는 '변사'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소리가 없는 영화였던 탓에 영사막 옆에서 영화를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변사에 따라 영화의 맛도 달라졌기에 배우보다 변사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은 당연지사다. 광고에 배우보다 변사의 이름이 더 큼지막하게 실렸고, 배우 월급이 40~50원이었던 데 반해 변사는 두 배에 가까운 70~80원을 받았다. 한 마디로 1930년대 중반 유성영화의 막이 열리기 전까지는 가히 '변사들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은막의 우상은 배우이고 극장의 스타는 변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건 아니었다.

남녀가 내외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1층에는 남성만 앉고 2층에는 여성만 앉는 등 이른바 '남녀 유별석'으로 되어 있던 단성사... 단성사는 지난 1993년 영화 '서편제'를 무려 194일 동안 연속 상영하며 '개봉관 최장 상영기록'에 103만 5천여 명 동원 기록을 세우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0년대말 들어 멀티플렉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성사의 인기는 결국 과거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리모델링과 부도를 거듭하다 끝내 지난 2011년 문을 닫은 채 여지껏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권기봉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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