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꿈을 꾸곤 한다. 그 정신 없는 꿈을 꾸다 새벽의 적막 속에 깨어날 때면, 내가 지금 어른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더 이상 고통의 짝짓기를 안 해도 된다는 그 단순한 이유 만으로도.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 짝을 지어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화학시간에는 실험을 같이 할 짝이 필요했고, 소풍 가는 버스를 탈 경우, 내 옆자리에 타 줄 친구가 필요해서 미리 친구에게 사전예약을 하기도 했다. 가장 흔한 고통의 짝짓기 시간은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남 속도 모르고 '자, 원하는 친구와 마음대로 짝을 이루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난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 땀이 났다. 눈치보며 우왕좌왕하다보면, 어느 새 다들 두 명씩 꼭 붙어 서서 홀로 남겨진 나를 의기양양 혹은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 숫자가 홀수면 나는 체육선생님과 짝이 되어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만 했는데 그것이 나았는지, 아니면 나처럼 남아버린 또 다른 인기없는 아이와 억지로 짝을 맞추는 것이 그나마 나을지는 판단이 잘 안 섰다.지금의 나를 보면, 그런 경험을 과거에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적을 듯 싶다. 다만 나의 그런 외톨이 성향을 은연 중에 유일하게 알아차릴 이들은, 그들 역시도 한 때 외톨이의 경험을 했던 이들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후각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멀쩡히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숨기고 싶은 아린 마음 한 켠의 장소를 건드리면, 그들(과 나)는 문득 불안한 눈빛이나 자의식에 굼뜬 몸동작들을 무방비하게 보여주었고 밝고 선한 미소 속에 예리한 자기방어의 칼날을 숨겨놓곤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내 자신, 혹은 상대에게서 불현듯 발견하게 될 때, 우리가 이토록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때로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어 울화가 치민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 하는, 무늬만 어른인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참 마음이 스산해지며 또 한 번 울컥한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