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업체에서 일하는 이규진(28) 씨는 3개월 전부터 집에 있는 데스크톱 PC를 사실상 쓰지 않고 있다. 집에 도착하기 전 '뉴 아이패드'나 '갤럭시S 3'로 이미 웹 검색이나 e메일 확인을 마치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 역시 부팅 시간이 오래 걸리는 PC 대신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이 씨는 "얼마 전 주말 여행가서 찍었던 사진을 분류하기 위해 컴퓨터를 석 달 만에 켰다"고 말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위기에 처했다. 태블릿, 스마트폰 등 모바일제품이 홍수를 이루면서 시장 자체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이제 PC는 태블릿처럼 플랫폼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신시켜야하는 처지가 됐다.
PC 시장 조사기관인 IDC와 가트너에 따르면 3분기 세계 PC 출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감소했다. IT거품이 빠지던 2001년 이후 분기 실적으로는 최악이다. 올해 전체로도 11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스마트 모바일 기기는 하루가 무섭게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증권사는 올해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이 1억 650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8%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분기 판매량이 2억대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실제 소비자의 IT기기 사용 경험에 관한 설문 조사도 이미 '포스트PC'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국내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태블릿PC를 보유한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태블릿PC의 활용에 관한 설문조사를 최근 실시한 결과 태블릿 사용 후 이용이 가장 감소한 디지털 기기는 데스크탑PC(42.6%, 중복응답)와 MP3플레이어(42.4%)노트북(31.1%)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PC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디자인과 플랫폼이 달라질 뿐이다. 입는 컴퓨터, 손목에 차거나 안경처럼 쓰는 PC 등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애플은 아이패드, 아이팟, 아이폰에 적용할 수 있는 입는 컴퓨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T셔츠에 그려진 기타나 피아노가 정말로 연주를 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구글 역시 지난 6월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 등이 내장된 구글 안경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안경을 쓰면 작은 스크린에 목적지 방향이나 친구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그대로 나타난다. 친구와 동영상 채팅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걸으면서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 구글은 비슷한 기능을 지닌 손목시계형 PC에 대한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국내 업체들도 첨단 PC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은 이른바 '접히는 모니터'인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연구개발을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양산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반도체 칩 분야 역시 이미 시험, 연구를 마친 상태로 조만간 양산에 돌입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