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면, 도시는 투명해진다. 그 비를 색색의 우산으로 떠받쳐 들고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내는 소리는 사뭇 정겹다. 팝송 '리슨 투 더 리듬 오브 더 폴링 레인'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정취는 더 깊어진다. 이러면서 도시는 조만간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단풍으로 물드는 산과 들이 사방에서 에워싸면 우리는 그 풍경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자연과 격리되면서 도시는 탄생했다. 그 둘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것으로 알았다. 촌뜨기와는 격조가 다른 면모를 갈구했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촌계관청(村鷄官廳)'이라는 말은 시골 닭이 한양관청을 보고 그 규모에 놀라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그러나 사실 촌계(村鷄)는 촌닭이 아니라 '촌뜨기'의 이두식 표현이다. '뜨기'라는 말도 '따(땅)+기(지)'의 음운변형으로 자기 동네 땅에서는 엄지처럼 으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서울에서는 내세울 게 없는 존재가 된다.
촌뜨기와는 다르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도시는 콘크리트와 철골, 그리고 기계로 움직이는 물건들로 잔뜩 무장했다. 대낮처럼 밝힐 수 있는 조명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의 세계는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은 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만큼 도시는 행복해진 것일까?
'형설(螢雪)의 공(功)'이란, 반딧불과 흰 눈에 비친 달빛으로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해 관직에 나선 이들의 가난하고 고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사 성어다. 요즘에는 반딧불을 보기도 어렵고, 달빛도 도시의 공해에 가려져 예전에 보던 것과는 그 밝기가 다르다. 자연을 파내버린 자리에 세워진 공간이 잃어버린 것들이다.
옛 서울시청 건물이 으로 단장해서 지난 26일 문을 열었다. 서울 한 복판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을 가진 랜드 마크의 출현이다. '책을 읽는 서울'의 두뇌와 심장이 생긴 것이다.
개관 기념으로 열린 북 페스티발의 절정은 '달빛독서'였다. 어둠이 깔린 시각, 독서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서관 친구들'이 북 라이트를 나누어 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와 아빠가 서울광장 잔디밭에 둘러 앉아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도심 속에서 자연과 함께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반딧불과 달빛을 상실한 시대에 보는 이 풍경은 서울 도서관과 함께 서울의 명물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