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독자의 거리
과거에는 팬레터로 겨우 저자에게 다가갔던 반면 이제는 SNS나 출간기념회 등에서 얼마든지 저자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출간기념회의 '저자'였던 적도 다른 저자들의 출간기념회의 '독자'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에겐 책의 저자들은 가급적 실제로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한다. 만나면 백 퍼센트 실망하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실망하게 될 거라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나부터 내 책의 독자들을 기피하진 못했다. 외로움과 호기심을 달래며 독자들로부터 '제대로 이해 받고 있음'을 확인 받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가끔 단정한 문체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나보다 날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독자의 편지를 만나면 매혹 당할 확률 100%였다. 아마 그런 팬메일을 당신도 보낸다면 답신을 받을 확률은 아마 꽤 높을 것이다. 그걸 아는 이유는 내가 소싯적에 그렇게 여기저기 보내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덧 저자와 독자는 연결되고 마주쳐서 정말 사적으로 친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느 인간관계처럼 이 관계도 권태와 상처가 남기도 한다. 언제는 그토록 좋다며 벽을 허물더니, 이젠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비난하거나 때로는 가장 지독한 안티로 변한다. 저자 입장에선 왜 멋대로 이상적인 모습을 상정한 후, 그대로 안 해주면 원망하냐 싶어, 필요이상으로 마음 준 것이 후회막심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저자도 물론 지극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나 역시도 그랬기 때문이다. 처음 용기 내서 보낸 팬레터에 답신이 오면 기뻐서 몇 번이고 읽고 주변에도 자랑했다. 저자와 사적으로 더 가까워질수록 묘한 성취감과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더 실체에 마주할수록 상대가 더 '인간적'으로 만만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여전히 나를 '팬'다루듯 하며 권위와 우위를 유지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거리를 두려는 행태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감히(!) 팬인 내가 답장을 안 하게 되었다. 저자와 독자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정말 좋을까? 거리조절에 잼병인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