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바닷가재 못먹겠다고 파업하던 시절



빨갛게 익은 바닷가재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 값이 만만치 않으니 서민들이 아무 때나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이런 바닷가재를 제발 그만 먹게 해 달라며 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있다. 초기 미국 정착민들이다.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미국 플리머스항에 도착한 이후 이주민들이 계속 몰려왔다. 이들은 주로 개척 농장에서 일했는데 한 농장에서 바닷가재 때문에 파업이 일어났다.

"바닷가재는 싫다. 빵을 달라" 노동자들의 요구조건 중 하나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바닷가재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내내 빵 대신 지겨운 바닷가재를 먹었기 때문이다.

바닷가재는 미국 개척 초기, 노동자들이 먹던 음식이었다. 플리머스 총독인 브래포드가 쓴 '플리머스 농장에 관하여'라는 책에 "인디언들이 바닷가재를 주워 땅에 쌓아 놓았다"고 할 정도로 흔했기 때문이다.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청교도 지도자 에드워드 윈슬로우의 편지에도 해변에 바닷가재가 넘쳐났다는 기록이 보이니 더 이상 바닷가재를 못 먹겠다며 파업했다는 전설이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바닷가재가 너무 흔해서 인디언들은 농사지을 때 퇴비로까지 썼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해 조선 후기 '연원직지'에 "바닷가에는 게가 너무 흔해 큰 게로 거름을 하는데 이것이 한양까지 올라오면 가격이 비싸진다" 고 했다. 수급 불균형으로 게가 남아돌아 거름으로 썼으니 미국서 바닷가재로 퇴비를 했다는 말도 현실감 있게 들린다.

천덕꾸러기 바닷가재가 비싸진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대륙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공급이 가능해지며 바닷가재의 몸값이 뛰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