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이 곧 이기는 법이다."
"누가 배신하면 본능적으로 보복하려 드는데, 보복하는 마음을 억제해야 성공한다. 배신을 실수라 생각하라. 대립관계가 생기면 그게 더 손해다."
무슨 도덕교과서 같은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수학적으로 증명된 명제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이런 '공식'을 내놓은 사람은 수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인 마틴 노왁(48) 하버드대 교수. 그는 지난 20여 년간 새로운 인류의 진화 이론에 매달렸고 연구 끝에 '협력'이란 키워드를 찾아냈다. 지난해 말 국내에 소개된 저서 '초협력자'(사이언스북스)에서 인류가 진화하고 혁신해올 수 있던 본성 중 하나가 협력이란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근 그가 한국을 찾았다. '초(超)협력'을 주제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기자를 만나 남북문제부터 직장생활, 일상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힘을 상기시켰다.
때마침 그가 머무는 동안 우리 사회엔 '갑질' '갑 마인드' 같은 단어가 유행했다. 항공기 승무원과 호텔 도어맨을 때린 한 대기업 임원, 중소 베이커리업체 대표에 대한 비난여론이 쏟아진 가운데 지난 주말에는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상식 이하의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졌다. 갑이라는 영업직원이 상대적으로 을인 대리점주를 윽박지르고 쥐어짜는 내용은 욕설과 막말로 점철돼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협력보단 경쟁이었다. 처세술이란 명분으로 경쟁자를 내치면서 악착 같이, 교묘하게 잇속을 차려도 '똑똑하게 잘 산다'고 거들었다. 이긴 자가 발밑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때도 '그럴 만한 자격이 있지 않겠나'라며 넘겼다.
과학자들이 파악한 인간의 진화 단계도 이를 뒷받침했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무자비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생각돼왔다. 찰스 다윈이나 리처드 도킨스은 모두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이기적 유전자가 살아남는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노왁 교수는 전통적 진화론을 넘어 변이, 선택에 이은 진화의 제3법칙으로 협력을 제시한다. 수학과 생물학, 컴퓨터 과학, 경제학, 여기에 게임 이론까지 더해 협력하는 생명만이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2~3억년의 세월을 통해 협력 체계를 일궈온 개미나 꿀벌 같은 진사회성 곤충은 종 중에 2% 뿐이지만 전체 곤충 생물량의 50%를 차지한다. 공동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번갈아 보초를 서는 미어캣이나 굶주린 동료를 위해 제 피를 헌혈하는 흡혈박쥐 등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도 협력을 통해 번성해온 사례가 무수히 많다.
기업의 제품을 파는 영업직원과 대리점주들은 서로 협력하며 이익을 키워갈 사이다. 그러나 이들은 무한한 경쟁 속으로 내몰렸고 여론은 '을'의 심정에 서 있다.
노왁 교수는 말한다. "관대해서 지는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이때 관대란 내가 상대와 비교했을 때 50% 미만으로 얻어가도 만족하는 마음이란다. 남양유업 임원들이, 조직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만들고 있는 이들이 '초협력'이란 새 패러다임을 공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