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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딸기는 스파이 활동의 부산물



딸기는 스파이 활동의 부산물

최초의 딸기는 과일이 아닌 화초로, 먹지는 못하고 눈으로 즐기는 관상용 열매였다. 이런 딸기를 어떻게 먹게 됐을까? 프랑스 스파이가 간첩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다.

논리적으로 연결도 안 되고 상식적으로도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람들이 딸기를 먹게 된 과정이 그렇다. 지금 먹는 딸기의 조상은 남미 칠레의 야생 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산딸기를 교배시켜 얻은 종자다. 1711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육군 정보국 소속 프레지어 중령을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와 페루에 파견한다. 현지의 방어망을 비롯한 군사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였다. 식물학자로 위장한 프레지어 중령은 칠레 해안가에 자생하는 야생딸기를 연구하는 척하며 열심히 간첩활동을 한 후 1714년 야생딸기 종자 몇 포기를 가지고 칠레에서 귀국했다. 간첩활동 결과를 보고한 프레지어는 제대 후 계란 크기의 빨갛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 칠레 딸기의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칠레 딸기는 관상용으로 먹는 종자가 아니었다. 유럽 육종 학자들이 이 칠레 야생딸기를 유럽의 산딸기와 교배해 식용 딸기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1764년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북미 버지니아에서 자라는 토종 산딸기와 칠레 야생딸기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얻었는데 이 딸기가 바로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딸기의 원조다. 이후 거듭된 품종개량을 거쳐 1806년 무렵부터 지금처럼 맛있는 딸기의 대량재배에 성공했다.

식물학자로 위장한 프랑스 간첩이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딸기를 먹는 대신 바라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딸기 한 알에도 뜻밖의 역사가 숨어있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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