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한해 2억 관객 시대를 부르짖었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지난달 점유율이 30% 대로 급락하면서 '한국영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다행히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무서운 이야기 2'의 초반 흥행몰이로 이같은 우려는 살짝 가라앉을 조짐이지만,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무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질 6월 역시 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당분간 고전이 점쳐진다.
그러나 한국영화 산업에서 위기론을 들먹이는 것은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이다. 예로부터 한국영화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모두 가파르다. 워낙 역동적이고 변수가 즐비해 일희일비해선 안될 분야의 산업이다.
솔직히 올해 초 극장에 거는 한국영화마다 관객들을 끌어모았던 상황은 다소 비정상적이었다. 하반기까지 차분히 지켜보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작 한국 영화계의 꽤 심각한 위기는 마이너 외화 수입업자들의 몰락에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수입·배급하는 현지 직배사들과 대기업 산하 배급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소규모 수입업자들이 지난해와 올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다양한 색깔의 외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다.
이를테면 지금의 상황은 대형마트가 조금씩 물건을 떼어다 파는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이너들이 수입한 외화일수록 유통과 진열 즉 배급과 상영에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나마 어디 호소할 데라도 있는 한국영화와 비교해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 마켓에서 만난 한 수입업자는 "제 아무리 '흙속의 보석'같은 외화를 어렵게 사오면 뭐하나. 극장망을 끼고 있는 대기업 배급사들과 손잡지 않을 경우, '퐁당퐁당'(교차상영을 뜻하는 영화계의 은어)은 고사하고 개봉 자체가 어렵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떤 사람들은 "부가판권 팔아 먹고 사는 보따리 장사들이 망한다고 무슨 악영향이 있느냐"며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균형있는 발전과 문화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마이너 수입업자들도 한국영화 산업의 보이지 않는 한 축이며, 이들이 있어야만 관객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먼저 바뀌어야 할 때다. 관객들이 먼저 블록버스터가 아닌 소규모 외화들도 가끔씩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모두가 우∼하니 몰려가 바람둥이 천재 과학자의 슈퍼 히어로 원맨쇼만 넋이 빠져라 보는 광경은 조금 재미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