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장수비결은 물밥?
영조는 조선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18세기에 여든 세 살까지 살았으니 지금이라면 백 살을 거뜬히 넘겼을 것이다. 장수만세의 주인공이지만 영조는 평생 장수의 최대 적이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무수리 아들이라는 신분적 열등감, 이복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다는 죄책감 등등, 신분은 왕이었지만 결코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역대 최고로 장수한 비결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식습관을 꼽는다. 영조는 특히 보리밥을 좋아해 여름이면 자주 보리밥을 물에 말아 들었다. 승정원일기에는 굴비와 고추장도 좋아한 것으로 나오니 기름진 산해진미 대신 물만 보리밥에 굴비 한 마리의 소박한 식사가 장수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물밥은 집에서 대충 먹거나 입맛 없을 때 후다닥 먹는 음식이다.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함께 물밥을 먹지 않는데 예전에는 손님상에도 물밥을 내놓았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이 젊었을 때 원로대신의 집에서 식사대접을 받았다. "이정당(政堂)과 철성시중(侍中) 집에서는 물밥을 먹었고 임사재의 집에서는 성찬을 대접받았다"고 했는데 정당은 지금의 차관보, 시중은 장관급 벼슬이다. 얼핏 들으면 고위 공직자 집에 갔다 문전박대 받았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고려 때 물밥, 즉 수반(水飯)은 지체 높은 집에서도 제대로 먹는 식사였을 뿐 아니라 손님이 왔을 때도 스스럼없이 가볍게 내놓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성호사설'에도 물밥을 먹는 것이 우리 풍속이라고 했으니 지금처럼 대충 끼니나 때우는 음식만은 아니었다. 찬물에 밥 말아 풋고추와 보리굴비로 한 끼 즐기는 것도 소박한 행복이다./음식문화평론가